대한민국 뿐이 아니라 전세계의 오락실을 천하통일하다시피 했던 90년대 초반의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가히트 게임이었다. 세계를 호령한 〈스트리트 파이터 2〉의 인기에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소문이 흘러나왔고, 게임과 영화의 차이를 알면서도 많은 게이머들이 그 소식에 솔깃해 했다. 사상 처음으로 가상의 게임 주인공을 표지모델로 기용한 잡지가 출판되는 가운데 〈툼레이더〉의 성공은 90년대 후반을 가로지르며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소문으로 확산됐다. 게임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가 게임을 떠나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라라를 보고 싶어하는 팬은 수퍼 아마조니아의 필름 강림을 기다렸다.
이윽고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조잡한 영화 몇 편을 거쳐 홍콩 최고 실력자들이 모인 〈스트리트 파이팅〉과 헐리웃 배우 2진이 모인 〈스트리트 파이터〉가 개봉되었고, 소문 많은 캐스팅을 거쳐 최적의 배역을 찾은 라라 크로프트는 안젤리나 졸리의 몸을 빌려 영화관에서 환생했다. 그리고 흥행에 앞서 엄청난 혹평 폭격에 고개 숙였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결과만 눈에 걸리는 영화화된 게임계에는 아직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기대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레지던트 이블〉의 그럴싸한 만듦새에 이어 〈레지던트 이블 2〉도 과격한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며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금, 게임이 가진 풍부한 스펙트럼이 필름에 맺힐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최소한, 한국에서 〈올드보이〉를 낳은 만화만큼 넓은 독자를 아직 게임은 가지지 못했다.
앞서간 속편, 고고학 모험담 〈인디아나 존스〉의 후속 게임들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를 거치고 거물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의 스케줄을 각각 조절한 후에야 1989년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던 〈인디아나 존스〉의 속편이 제작에 단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와 〈우주전쟁〉을 찍고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3〉에 바쁘고 〈인디아나 존스〉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듯 보이는 해리슨 포드 영감님을 생각할 때, 속편의 제작 가능성이 밝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게임은 이미 1992년 첫번째 속편을 내놓았다. 세계를 떠돌아 다니며 나찌와 고대 유적을 다투는 모험담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이 바로 그 게임이다.
시나리오 검토 중인 〈인디아나 존스 4〉에 대한 해외 단신 중에 '아틀란티스 문명에 대한 시나리오'는 아마도 게임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에 대한 소식이었을 확률이 높다. 공식적으로도 〈인디아나 존스 4〉라고 불리곤 했던 이 게임은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게임플레이로 명성이 높았던 수작. 주인공 캐릭터의 행동과 탄탄한 배경줄거리가 중시되는 어드벤쳐 장르의 전성기 때 나온 게임은, 어드벤쳐라는 게임 장르의 특성상 영화로 만들기도 용이한 게임이기도 하다.(성공적인 게임 각색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 바로 어드벤쳐 장르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게임 만의 오리지날 스토리로 이루어진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은 영화와 비교하자면 잘 쓴 팬픽에 가깝고 영화로 치자면 〈툼레이더〉정도의 과장이 많아 〈인디아나 존스〉 영화 시리즈의 속편으로 쓰기엔 이야기의 촛점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게임으로써는 성공적인 영화 각색 게임(영화도 게임으로 많이 각색된다)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만든 제작진이 그대로 투입되었고 이국적인 배경과 고대 문명, 로맨스와 신비주의가 잘 어울린 〈인디아나 존스〉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 〈인디아나 존스〉의 새 모험담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이후로 속편을 내놓지 않는 사이, 게임 쪽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게임 판권을 가지고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을 만들었던 루카스아츠(조지 루카스의 루카스필름 산하 게임 제작사)가 소품 〈인디아나 존스 : 데스크탑 어드벤쳐〉를 발표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수준 이하의 완성도에 금방 잊혀져 버렸고 영화가 점점 고전이 되어갈 수록 게임도 고전 시리즈가 되어갔다.
부활은 〈툼레이더〉에서 시작됐다. 영화가 아닌 게임 〈툼레이더〉가 발표되고 메가히트로 이어진 1996년, 고대 유적을 발굴하며 악당과 싸우는 라라 크로프트가 인디아나 존스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이 분명해졌을 때 루카스아츠의 제작진도 게임 속편을 기획했다. 그러나 이미 1996년은 어드벤쳐의 전성기가 지나 있었고 제작진도 〈인디아나 존스 : 아틀란티스의 운명〉 시절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안이하게 〈툼레이더〉의 형식을 쫓아간 속편 〈인디아나 존스 : 지옥의 기계〉는 1999년 발표되었고 종종 〈인디아나 존스 5〉로도 불리웠지만 범작 이상은 아니었다.
손쉽게 〈툼레이더〉를 따라한 게임플레이는 인디아나 존스를 격렬하게 움직이는 액션 게임으로 바꾸어 놓았고 〈툼레이더〉 식의 빈약한 배경 줄거리에 빈틈투성이 캐릭터가 움직이는 새로운 게임은 이미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었다. 게임은 〈툼레이더〉를 즐긴 사람이 흥미삼아 찾을 만한 수준일 뿐, 예전 영화나 게임같이 수작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몇 년이 흘러 2003년도에 발표한 〈인디아나 존스 : 황제의 무덤〉에 이르러서는 〈인디아나 존스 6〉라고 부르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여전히 〈툼레이더〉를 벤치마킹한 게임플레이에 〈인디아나 존스 : 지옥의 기계〉때보다도 형편없는 시나리오는 유치함의 나락에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인디아나 존스〉는 추억에 묻혀갔다.
비주얼의 유혹, 기괴한 동화 〈앨리스〉
게임을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는 게임을 위한 것이다. 게임에 밀착되어있는 시나리오일수록 훌륭한 게임을 만들 수 있지만 영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화를 유혹하는 게임이 있다면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이 있었거나 영상으로 옮겼을 때도 충분히 매력적인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게다. 루이스 캐럴의 의미심장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괴하게 해석한 게임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이하 〈앨리스〉)는 기발하고 해괴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경우다.
게임이 알려지기까지는 게이머들의 호응과 유명세가 기반이 되었지만 상업적인 지명도로 〈앨리스〉는 〈스트리트 파이터 2〉나 〈툼레이더〉정도의 게임이 아니었다. 토끼의 인도로 이상한 세계에 도착하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정신착란 소녀의 환상으로 해석하는 〈앨리스〉의 세계는 기발한 형식으로 디즈니의 이미지를 꼬아놓는다. 캐릭터의 이미지나 복장에서 월트 디즈니 버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이 게임은 밝고 신비로운 디즈니의 캐릭터를 잔혹하고 무시무시하게 재구성한다. 동화의 패러디로도 신선한 화면을 보여주며 적을 무찌르는 박진감있는 게임으로써도 충분한 재미를 지닌 이 게임의 비주얼과 진행은 기발한 컨셉의 B급 스릴러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 불안정한 정신 세계에 기반한 영화 〈장화, 홍련〉〈인드림스〉〈셀〉같은 영화를 기억한다면 〈앨리스〉를 플레이했을 때 영화관계자가 느낀 유혹을 알 만하다.
압도적인 플롯, 세련된 공포의 세계 〈사일런트힐〉
배경줄거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게임이 영화화되며 만연한 편견 중에 하나는 '게임의 스토리는 단순하다'라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게임 원작 영화를 살펴보면 이해 못 할 오해도 아니긴 하다. 때문에 〈사일런트힐〉같은 게임의 영화화 시도가 반가운 지도 모르겠다. 이미 영화화된 캡콤의 히트작 〈바이오해저드〉(영화 제목은 미국 수출판을 따른 〈레지던트 이블〉)을 의식하며 시작한 〈사일런트힐〉 시리즈는 플래티넘 히트작 뒤를 따른 수많은 범작들이 실수하곤 하는 어설픈 모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긴장감 넘치고 이야기 진행이 박진감 있는 〈바이오해저드〉의 영화적인 구성을 형식적으로 모방하되 분위기와 진행에서 전혀 개성이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이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사일런트힐〉은 〈바이오해저드〉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아드레날린 넘치는 세련된 공포를 게이머에게 선사한다. 유령과 괴물과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인물이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와 착란을 거쳐 비주얼로 이어지는 〈사일런트힐〉은 (제목처럼) 고요하고 축축한 공포를 스멀스멀 가져온다. 심리적이고 복잡한 플롯을 선보이며 긴 호흡을 가진 이 게임은 기술적인 한계를 뛰어넘기위한 기술적 타협점(안개로 휩싸인 음침한 배경과 회색톤의 인물)마저도 공포의 도구로 이용하는 영악한 게임이기도 하다. 매 시리즈마다 기술과 이야기에서 세련된 공포의 영역에 도전하는 〈사일런트힐〉의 영화판 역시, 유려하게 꼬인 인간 심층 공포를 끌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역사 속의 상상력, 영화배우가 출연하는 〈귀무자〉
게임은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기를 매개로 하여야 즐길 수 있다. 각종 생활편리를 제공하는 컴퓨터마저도 게임을 할 때면 게임기가 되는 셈이다. 게임기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지닌 일종의 컴퓨터라서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이런 프로그램 중에서 게임의 기본적인 진행을 통제하는 프로그램을 '게임엔진'이라 부르는데, 제목처럼 공학적인 결과물이다. 훌륭한 공학적 결과물이 그렇듯이 '게임엔진'도 개조를 거쳐 다른 제품에 쓰이곤 한다. 같은 회사에서 발표한 게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이오해저드〉가 히트한 이후, 이 게임의 '엔진'은 몇가지 개조를 거쳐 다른 게임에도 이식되었다. 다른 시리즈의 토대를 이루며 개성은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게임은 비슷한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다. 걸작 〈바이오해저드〉의 엔진을 토대로 나온 게임은 그 뿌리처럼 영화적인 화면을 선보이며 풍부한 내러티브를 내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데빌 메이 크라이〉가 일본 만화적인 설정과 과장 탓에, 〈카오스레기온〉이 지나치게 거창한 배경 탓에 영화로 만들기 힘든 반면에 〈귀무자〉시리즈는 매우 영화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일단은, 게임 주인공부터가 그렇다. 주 시리즈만 세 편을 선보인 〈귀무자〉는 매 시리즈마다 실제 배우의 얼굴을 입혀 게임에 배우를 '출연'시킨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1편은 아시아 전역에서 지명도 높은 중국계 일본인 '금성무'를 출연시키고, 볼륨과 게임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 2편은 고인이 된 일본배우 '마쓰다 유사쿠'를 출연시키는 괴력을 발휘하더니 최근에 발표한 3편에는 1편의 주인공 '금성무'와 함께 프랑스 배우 '장 르노'를 함께 출연시키는 깜짝쇼를 선보였다.
그렇다고 형편없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처럼 스타배우의 유명세만으로 게임을 끌어가는가 오해하면 섭섭하다. 게임은 짜임새 있고 흥미로운 배경줄거리를 토대로 스토리에 밀착한 액션의 합으로 짜여져 있고, 그 구조물은 매우 촘촘해서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기 힘들다. 약점이 있다면 일본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탓에 월드릴리즈 영화로 만들기에 다소 어색함이 있다는 것.
아드레날린의 최고봉, 살육의 롤러코스터 〈둠〉
영화화 리스트에 오른 전력이라면 미국 id사의 전설적인 게임 〈둠〉시리즈도 만만치 않다.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만큼이나 새로운 장르를 정립시키다시피한 〈둠〉의 영향력은 수많은 게임 언론이 발표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있는 이 게임에 대한 찬사로 알 수 있다. 사격과 기동이 오묘한 퍼즐과 연계되어있는 〈둠〉의 인상적인 플레이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는 긴장감에 있어 어떤 게임도 따라오지 못 할 만큼 탁월하다.
짜임새 있고 이야기 거리가 풍부한 내러티브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둠〉 제작진은 게임의 강력한 액션과 원초적인 폭력에 기반하는 파괴력만으로 이 게임을 수많은 게이머와 영화제작진의 뇌리에 박아 놓았다. 게임에 특성때문에 영화화 되었을 때 이야기는 게임과 매우 다를 확률이 높은데, 스토리가 강조된다면 직선적이고 강렬한 게임의 액션을 잃게되고 액션이 강조된다면 스토리 빈약한 게임 원작 영화의 리스트를 추가시키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게임이 되겠다.
최초의 작품이 1994년에 발표되어 장르를 개척한 이후, 최근에 신작 3편이 발표되었다. 그간의 변화 때문인지 〈둠〉시리즈의 특징이던 높은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게임의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스토리가 매우 강조된 좀비물 분위기로 바뀌어 버린 것.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인상적인 컷신과 게임화면으로 이루어진 〈둠3〉는, 시리즈의 특징이었던 박진감은 여전하지만 복잡하고 영화 같아진 스토리에 보조를 맞추느라 〈둠〉의 매력이었던 직선적이고 강력한 진행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아직까지 썩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는 〈둠3〉는 이전 작품과는 다소 이질적인 게임이지만 영화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동력을 제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문은 가끔 사실이 된다. 연예인들의 가십 기사도 그렇지만 영화화한다는 게임에 대한 소문도 그렇다. 필름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는 게임이 가진 에너지에 공명해 본 게이머가 느끼는 흥분이란, 새로운 생명을 얻는 분신을 보는 것과 같다. 게임이 영화화되는 새로운 지평에 선 게이머가 소문에 솔깃하는 건, 그런 이유다.
지난 포스트에 이어 게임과 영화와의 관계에 대해 기획한 무비스트특집기사(원문)의 속편입니다. 원래는 당시 영화 웹진으로 유명했던 엔키노(현재 폐간)처럼 장기 연재 기획물을 생각했었는데, 편집장이 난색을 표한 결과로 두 개로 나누어 연재하게 되었지요.(실제로는 연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만, 억지로 두 편은 나누었습니다.) 영화화 예정 게임의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쓴 기사인데,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실제로 영화화 된 것은 그리 많지 않네요. 세월을 느끼게 하는 기사입니다. 원문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겼습니다.
여걸 인디아나 존스, 라라 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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