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하는 낙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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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1984 (2020) / 패티 젠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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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오랫동안 정체를 숨기고 박물관 직원으로 살아가는 다이애나(갤 가돗)는 근래 친해진 박물관 직원 바바라(크리스틴 위그)가 독특한 유물을 감정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석유 사업으로 TV 광고에도 나오며 유명인이 된 맥스웰 로드(페드로 파스칼)가 나타나 박물관에 기부를 위한 파티를 열고, 마지못해 나선 다이애나는 전편에서 죽었던 연인 스티브(크리스 파인)를 만난다. 한편 맥스웰이 정말 노리는 것은 바바라가 감정 중인 유물.

어떤 소원이라도 이뤄주는 고대 유물을 통해 탄생한 두명의 빌런을 상대하는 [원더우먼]을 다룬 속편. 인간에 비해 오래 사는 [원더우먼]의 수명을 활용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썼던 전편에 이어 미국 경제 최전성기인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밝고 원색적이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시대에, 희망을 이뤄주는 유물을 통해 탄생한 빌런을 상대하는 상징적은 구도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여기에 [원더우먼]도 같은 유물로 죽은 연인을 불러왔고, 당연하겠지만 불가능한 실현은 댓가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치 1980년작 [슈퍼맨 2]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 경쟁사 마블과 대비해 비교적 완벽함에 가까운 DC 수퍼히어로의 인간적 고뇌와 역설을 다룬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제목에도 가져온 것처럼 1980년대의 분위기를 프로덕션과 음악, 배경 설정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이디어와 만듦새가 볼 만 하다. 여기에 이미 선배격인 [슈퍼맨 2]에서 다루긴 했지만 DC 수퍼히어로의 태생적 한계를 활용한 플롯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세밀하게 들어가면 전편에 이어서 그저 그렇다. 좋은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2명으로 나뉘 악당의 비중은 둘 다 고만고만하며 액션도 별로인데, 특히 최강 비밀무기인양 황금갑옷을 입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하이라이트에서 단적으로 증명한다.  딱히 특기가 뭔지 알기 어려운 치타가 전편의 묘하게 임팩트가 없는 초인 빌런 아레스를 치환했고, 두뇌형 빌런 맥스웰은 연출 실패로 존재감 제로에 가까워 아쉬웠던 닥터 포이즌의 연장선이다. 상대적으로 같은 회사 다른 영화들의 완성도가 떨어져 착시가 있어 그렇지, 경쟁사 영화와 비교하자면 수준이하로 빈곤한 아이디어에 박진감이 부족하다.

속편에서도 느슨한 안정감을 유지한 시리즈. 워낙 같은 회사 영화가 죽을 쑤는 과정에서 선방하는 영화의 프리미엄을 제대로 얻는다. 외모에 비해 뻣뻣한 주연 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와 짝을 이루는 와중에, 여전히 다음 편이 더 나을 구석이 많은 미완의 범작.


글루미 선데이 (1999) / 롤프 슈벨

출처: TMDB

헝가리에서 식당을 개업하는 유대인 라즐로(요아킴 캐롤)는 식당에서 접객을 담당하는 일로나(마로잔 에리카)와 연인 사이. 하지만 일로나는 식당에 피아노 연주자 오디션을 본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와도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질투하고 견제하는 두 남자와 모두 연인을 하기로 할 정도로 독특한 매력이 있는 일로나는 한 때 헝가리에 사업차 와 있던 독일인 사업가 한스(벤 베커)마저도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이 된 한스는 점령군 자격으로 헝가리에 돌아온다.

전혀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3명의 연인이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파격적인 연인 관계가 되고 각각 식당 주인과 히트곡 작곡가로서 성공하며 황금기를 맞이한 전반부와 술김에 투신자살을 할 뻔할 만큼 일로나를 원했던 독일인이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점령군으로 돌아온 후반부를 대치한 독특한 연애담.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연인이 되는 과정에서 새어 나오는 탄력이 전반부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이라면, 절정의 순간 터진 전쟁과 함께 결말이 예상 가능한 독일군의 등장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후반부를 이끈다. 독특한 이야기의 전반부와 전형적인 후반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만큼 3명의 매력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화술이 좋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그 중에서도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중심에 있는 일로나와 갈등을 수긍하고 부드럽게 해결하는 매력적인 인간형으로 그린 라즐로에게 있다.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설정 덕분에 파악하기 어려운 안드라스는 영화 제목과 같은 주제곡을 내놓는 역할에 치중하고 인물에 몰입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굴곡과 함께 사라진다. 조금만 틀어졌다면 설득력이 약하거나 뻔하게 흘러갈 뻔한 이야기를 붙잡는 두 배우의 매력과 인물 묘사가 훌륭하다. 홍보용으로도 널리 알려진 미사여구에 비해 세월과 공간의 차이 때문인지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곡마저도 그럴싸하게 들리는 매력이 있는 작품.

세월이 지나도 독특한 매력을 잃지 않은 개성 있고 풍부한 이야기와 인물을 갖춘 작품.


미드나이트 스카이 (2020) / 조지 클루니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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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환경 악화로 다른 외계 행성에 식민지를 구하기 위해 탐사선을 보내고 대부분이 탈출선으로 떠난 지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과학자 어거스틴(조지 클루니)은 시간이 흐른 뒤 대부분의 탈출선이 연락두절이 되었고 유일하게 식민지 확인에 성공하고 복귀 중인 탐사선 ‘에테르’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하지만 가까스로 연결한 ‘에테르’ 승무원 설리(펠리시티 존스)와의 연락이 곧 끊겨 버리고, 어거스틴은 관측소에 숨어 있다 발견한 소녀 아이리스(카오일린 스프링걸)와 함께 다른 관측소로 이동해 연락을 시도하려고 한다.

환경 재난으로 인류가 살 수 없게된 지구에 홀로 남은 과학자와 좋은 식민 행성을 발견해 임무에 성공했지만 지구로 돌아오며 사고를 겪은 탐사선을 교차하며 종말과 희망에 대해 섬세한 개인사를 채우며 접근하는 SF 영화. 지구에는 과학자와 숨어 살던 소녀 2명, 우주선에는 5명의 승무원 밖에 없어 사실상 제한적인 공간과 소규모 등장인물의 사연에 집중하는 군상극으로 다듬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등장인물의 사연을 대충 알 때 쯤 마지막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한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인데, 허를 찌르는 플롯 대신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추억과 고민을 풀어서 보편적인 인간사를 조망하는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군상 속에서도 몸값에 비례한 스타 캐스팅에 이야기의 비중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소소하나마 마무리에서는 작은 반전을 하나 준비해 두 인물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반전 자체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어서 어디까지나 픽션의 묘미를 살리는 정도. 이야기는 나쁘지 않고 인물 묘사도 꼼꼼하며 균형감이 좋은 연출도 미려하다. 하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는 것이, 영화에서 다루는 SF적 상상력이 그동안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인터스텔라][마션][그래피티] 같은 독창적인 작품에 비교할 수준은 아닌데다가 평범한 상상력에 기반을 두어 처절한 현실성이 약할 수 밖에 없는 배경에서 움직이는 배역에 일정 이상 몰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슷한 맹점을 철학적인 스타일로 풀어냈던 [애드 아스트라]의 선택이 돋보이는 순간.

좋은 배우이자 작가의 신작이자, 많은 넷플릭스 배급 영화가 그런 것처럼 나쁘지 않지만 필모그래피에서 그다지 뛰쳐나가지도 못하는 그만한 영화로 완성한 안정적인 SF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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