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하는 낙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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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 (2016) / 자비에르 돌란

출처: IMP Awards

집 나간지 10년이 넘어 가족을 만나러 돌아온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파리에서 작가로 성공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루이를 만나러 모인 가족들은 루이가 조심스럽고, 특히 컴플렉스를 느끼는 형 앙뜨완(뱅상 카셀)과 과한 애정을 가진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이 그렇다. 하지만 루이는 단순히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기만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가족과의 관계를 형식적으로만 유지하던 성공한 작가가 불편한 소식으로 가족들과 만나 대화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자신들과 거리를 둔 둘째와의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과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찌질함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 목적인 작품이다. 가장 가깝고 서로를 이해해야할 것 같은 가족 관계의 이면에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부정적인 감정을 극도로 날카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충돌하는 과정이 볼 만 하다.

단지 가족 5명의 대화와 상황만 가지고 끝까지 달리는 작품이라서 배우 보는 맛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작품인데, 프랑스 영화계의 대스타이기도 하거니와 실력도 정평이 난 스타들이 이름값은 분명히 한다. 다만 프랑스 시골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인 가족의 다툼을 몰입해서 보기엔 현대 한국인의 경험과 감정이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어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 이상 즐기기 힘들다. 특별하게도 영화와 비슷한 가족 사이의 갈등을 경험했던 관객이 아니라면 몰입이 쉽지 않은 작품일 듯 하다.

이성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몰입은 어려운 가족에 대한 단상. 연극 원작의 느낌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다.


빅쇼트 (2015) / 아담 맥케이 단평

출처: IMP Awards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전문가 마이클 버리(크리스챤 베일)는 부동산 담보 대출을 이용한 복합 투자 상품을 조사하다가 알려진 것보다 상품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값어치가 내려가는 상품에 투자한다. 버리의 투자로 힌트를 얻은 은행가 베넷(라이언 고슬링)도 유사한 상품을 만들고, 특이한 성품을 가진 헤지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도 상품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다.

부동산 신용도를 허수로 만들어 대량의 금융상품을 유통했다가 월가의 거품이 꺼지며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불러왔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부동산 기반 금융 상품의 맹점을 미리 알아챈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 상황과 엮어 극화한 영화. 냉소적인 내레이션과 뉴스 장면을 편집한 화면, 우디 앨런식으로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컷씬 사이에 건조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배치해 객관적인 거리를 두면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당시의 전개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는 작품이다. 긴 호흡의 이야기에 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나고 격정적인 장면도 애매한 플롯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면서도 무게를 잃지 않고 몰아가는 연출이 일품이고, 전반적으로 연기가 좋은 작품이지만 특히 삐딱한 성품을 가진 투자자를 연기하는 스티브 카렐과 크리스챤 베일의 솜씨가 단연 뛰어나다. 인물의 깊이를 표현하는 관록도 좋지만 테크닉으로 세밀하게 인물을 그려내는 표현력이 일품.

적나라하게 당시의 상황과 부도덕을 까발린다는 점에서 [시리아나]나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 이야기의 무게감과 감각적인 연출이 모두 훌륭하고 적재적소에 새겨놓은 유머가 매우 좋다. 미국에서 만들 수 있는 부동산발 금융 위기에 대한 빼어난 후일담 중 하나.


녹터널 애니멀스 (2016) / 톰 포드 단평

출처: IMP Awards

미술관장 수잔(에이미 아담스)은 전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의 소설 초고를 받는다. 밤늦게 일한다고 수잔에게 붙여준 별명 [야행성 동물]이 제목인 잔혹한 소설이다. 수잔은 소설에 푹 빠지고, 수잔의 현재 남편 허튼(아미 해머)은 소원해진 부부 관계 사이에 불륜을 저지른다.

두 가지 이야기를 엮었다. 수잔이 전남편 에드워드와 결혼하고 헤어지게된 이야기와 에드워드의 소설 속 범죄에 대한 이야기.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처럼 같은 배우가 각각 남편과 소설 속 등장인물을 연기하는데, 영화 끝까지 가봐도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결국 전혀 연결점이 없는 이야기 두편을 엮으며 화학적인 결합을 노리는 작품.

범죄극에 해당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오히려 스릴러적인 구성을 버리고 연대기 순으로 직진하고 주인공 토니가 느끼는 상실감과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소설 밖 이야기는 수잔의 공허한 감정에서 출발해 에드워드와 수잔이 헤어지는 과정을 스릴러처럼 엮었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이야기를 구성해 영화가 끝날 때는 소설 속 이야기의 감정 고조와 소설 밖 이야기의 극적 충격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봉합한다. 풀어놓고 보면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고 선명한데, 배우들의 연기와 공들여 구성한 프로덕션, 기교를 부린 연출로 특별한 개성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전작 [싱글맨]과 같은 작가의 인장을 찍었다.

포스터에 제목과 함께 올라있는 네명의 배우가 골고루 좋다. 전작에서 줄리언 무어가 맡았던 게이의 친구 귀부인은 짧은 역할로 등장하는 안드리아 라이즈보로가 물려받았다. 아무래도 분량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비중이 크지만, 강렬하기는 아론 테일러 존슨이 더 좋고 안정감 있고 디테일한 연기는 마이클 섀넌이 좋다. 에이미 아담스는 이제 장기같이 느껴지는 섬세하고 조용한 인물 해석이 여전하다.

개성 강하고 화려한 영화. 관객의 기대와 관습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능란하게 다루는 솜씨가 좋다. 영화 전체가 묘하게 공허한데, 허무한 퇴폐미를 표현하는 작가의 작풍이라 생각하면 그만의 가치를 찾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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