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하는 낙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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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2020) / 연상호 단평

출처: 다음 영화

전작 [부산행]의 난리통에서 피난민에 포함되어 탈출한 한정석(강동원)은 선내에 퍼진 좀비 때문에 조카와 누나를 잃고 살아남은 매부(김도윤)와 함께 홍콩에 살고 있다. 홍콩의 뒷세계 일당들에게 난리 와중에 서울에 버려진 외환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받은 한정석은 내키지 않았지만 임무에 적극적인 매부와 함께 자원한 다른 일행과 인천을 통해 서울로 들어간다.

전편 이후 좀비가 창궐한 서울로 돌아온 사람들이 겪는 아비규환을 다룬 영화로 더 규모가 커지고 대상이 좀비 뿐 아니라 극한상황에서 별도의 사회를 이룬 군상도 상대해야 하는 전형적인 속편. 전편이 [28일 후]라면 이번 영화는 [28주 후]에 가깝다. 전편과 동일하게 좀비물이라는 기존 장르를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이식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차이를 개성으로 삼는 것은 동일한데, 전작 자체가 세계관 구축에 공들인 작품이 아니라는 약점이 규모를 키우다 보니 드러나고 연출의 약점도 함께 드러난다. 사실상 밀폐 공간을 이용한 스릴이 백미였고 제한 공간을 잘 활용했던 전편에 비해 도시 하나로 커진 규모에 이르자 전편에서 번뜩였던 재치와 아이디어가 클리셰를 극복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끝난다. 전편의 비범함이 사실은 평범한 연출의 우연한 기회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속편.

허술한 줄거리와 빈약한 세계관을 자신의 역할에 익숙한 캐스팅으로 많은 부분 무마한다. 특히 주조역진이 클리셰에 기댄 역할을 잘 활용해 보는 맛이 있다. 근래 억척스럽게 변한 역할 전문이 된 이정현이 특히 물 만난 듯 잘 연기한다.

전형적인 속편인데다 소포모어 징크스 벽을 넘지 못한 범작. 하지만 허술한 세계관 만큼 비어있는 이야기가 많아 속편을 잇기에는 좋겠다. 잘 하면 장기 시리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직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다.


퍼니 게임 (1997) / 미하엘 하케네 단평

출처: Libercubo.it

호수 옆 별장으로 가족 여행을 온 안나(주자네 로타허)와 게오르그(울리히 뮈어) 부부는 옆집 별장 가족의 처음 보는 일행인 두 청년 파울(아르노 프리시)과 피터(프랑크 지에링)이 방문하고, 곧 이어 이 둘이 평범한 옆집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곧 가족 모두를 인질로 잡고 폭력을 가하고 영문 모를 주문을 하기 시작한다.

싸이코패스 두 사람의 영문 모를 습격을 받은 한 가족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 플롯은 단순하고 장르 공포물에서 곧잘 다루는 상황인데, 직설적인 제목만큼 풀어나가는 화법이 독창적이다. 흔하게 쓰는 평론 용어를 빌려와 브레히트적인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의 시간 마저도 바꾸어 가며 형식을 비틀고, 아무리 비극으로 치닫는 공포물이어도 장르적이거나 관습적인 이유로 건들지 않는 금기를 일부러 먼저 드러낸다. 싸이코패스를 다루는 장르물이 일정 이상 비윤리적인 몰입을 이용한 부도덕한 쾌감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영화는 아예 그 싹부터 눌러 한순간도 불편함을 피할 수 없는 가학적인 영화로 만들었다.

형식을 비틀고 직설적으로 다룬데다 제목마저도 기능적인 영화의 의도가 비윤리적 쾌감을 즐겼던 관객의 무의식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작품. 독특한 스타일은 작가의 개성이지만, 이후 많은 유럽 작가주의 영화의 사조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연히 관객 입장에서는 끝까지 보기 고역인 작품. 너무 선명한 주제의식은 항상 즐길 만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988)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단평

출처: Polish Poster Gallery

망원경으로 아파트 주변을 훔쳐보는 버릇이 있는 토멕(올라프 루바젠코)은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미모의 화가 마그다(그라지나 샤포워프스카)를 훔쳐 보며 매일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건다. 점점 대담해진 토멕은 일하는 우체국을 통해 가짜 당첨권을 보내기도 하고, 우유를 배달하며 먼발치에서나마 그녀를 보려고 한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남자와 성숙하고 세상을 잘 아는 여자가 스토킹 과정에서 만나 야릇한 관계에 빠지는 이야기. 소재만 놓고 보면 변태적인 범죄와 이어져도 할 말이 없는데, 사건은 막상 대단치 않은 선에서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전개에서 예상이 가능한 것처럼 처음에는 스토킹을 하는 남자가 주도권을 가지다가 본격적으로 정체를 여자가 알게된 후부터는 여자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파국이 지난 후에는 후회와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상황에 놓였지만 남녀관계의 일반적인 감정 변화에 대해 표현한 영화. 이를테면 [봄날은 간다]와 같은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주제가 일반론에 닿아 있고 비교한 영화 [봄날은 간다]가 그런 것처럼 종말을 맞은 연애는 서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독특함이 여전한 작품이다. 더구나 당시는 물론 현대 한국과는 여러모로 다를 수 밖에 없는 1980년대 폴란드가 배경인데다 위태로운 선을 지킨 소재를 가져다 쓴 까닭에 영화의 개성은 여전할 수 밖에 없다. 대신 디테일에서 현대 한국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한계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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