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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2021) / 앤디 서키스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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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복역 중인 연쇄 살인범 클레터스 캐서디(우디 해럴슨)가 인터뷰어로 에디 브록(톰 하디)을 지목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에 대한 실마리가 필요한 수사 책임자 멀리건(스테픈 그레이엄)은 에디를 데려야 인터뷰를 하며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캐내도록 한다. 인터뷰에서는 건진 게 없었지만 감옥에 남긴 스케치를 정교하게 기억한 [베놈] 덕분에 에디는 희생자들이 묻힌 곳을 찾아낸다. 순식간에 여론에 밀려 사형이 결정된 캐서디는 마지막으로 에디 브록을 부르고 우발적으로 손가락을 문 후 피를 통해 심비오트를 받아들인다.

인간으로도 최악의 연쇄 살인범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능력으로 피를 통해 [베놈]의 심비오트를 ‘카니지’라는 악당으로 발전 시키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변형 히어로물. 이야기 자체가 단순한데다 등장인물과 세계관 설명을 전편에서 다 해버린 관계로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여기에 전편에 이어서 [베놈]과 에디 브록의 버디 코미디를 더하고, 클레터스 캐서디의 과거사와 (아무리 봐도 뮤턴트!인) 여자친구 이야기를 병렬로 배치해 볼륨을 키웠다. 결과적으로는 전작에서 빠져나간 히어로 탄생기와 배경 설명을 빌런의 과거사로 채운 구조.

전편도 빼어난 작품은 아니었고 속편이 있을 것이 분명해 미완을 참아줄 수 있었는데, 막상 첫편의 제한을 푼 속편은 전편보다도 못하다. 관람 등급을 걱정했기 때문인지 전편보다 훨씬 순해진 액션 시퀀스를 비롯해서 더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베놈] 대 ‘카니지’ 대결 장면도 뻔한 수준을 넘지 못해 인상적이지 못하고, 좋은 배우를 기용했지만 비인간적인 빌런의 클리셰 과거사는 몰입하기 어렵다. 막간을 채운 버디 코미디도 영 재미가 없다. 결정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덜어냈기 때문인지, (왜 [베놈]이 ‘카니지’의 붉은색을 싫어하는지? 왜 슈릭이 후반부에 ‘카니지’와 대치하는지?) 핵심 상황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체감보다 실제 상영시간이 훨씬 짧다는 점 이외에 장점을 찾기 어려운 함량미달 속편. 희미해진 존재감을 영화 세계관 쿠키로 연명하는 졸작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2021) / 캐리 후쿠나가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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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전편에서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트를 체포하고 연인 엘리자베스 스완과 여행을 떠난 제임스 본드는 옛 연인 베스퍼 린드의 묘지에 갔다가 폭탄 테러에 이은 공격을 당한다. 가까스로 살아 남은 후 아무도 모르는 목적지가 새어나갔다는 의심에 연인과 헤어진 후, 은퇴 생활을 살고 있던 본드에게 친구이자 CIA 요원 펠릭스가 나타나 쿠바에서 스펙터 잔당들의 모임이 있으며 얼마전 MI6가 운영하는 비밀 연구소에서 사라진 연구원을 찾아야 한다는 의뢰를 받는다.

오랫동안 환상의 시나리오로 유명했던 [여왕폐하 대작전]의 속편이 여러 경로를 거치며 나름의 방향성을 찾아 대단원의 마무리로 갈무리한 본드무비. 전편에서 이어 받은 [여왕폐하 대작전] 실마리를 훌륭하게 각색해서 기존 팬도 예상하기 어렵게 풀어냈고, 전통적인 영웅물 분위기의 본드무비의 유산을 활용하면서도, [카지노 로얄] 이후 이전 배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제임스 본드를 유지하며 전통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했다. 이야기의 빈틈을 잘 조직한 액션 시퀀스의 쾌감과 장르적 재미로 채운 영리한 영화. 전임자들에 비해 묵직해진 분위기를 잘 활용하면서도 유들유들하게 유머를 섞는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단순한 이야기를 잘 꾸민 시나리오는 플롯 자체보다 컨텍스트를 강렬하게 의식했다. 전편에서 이어 받은 [여왕폐하 대작전]은 물론이고, 주역을 맡은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럼에도 한편의 본드무비로나 전편에서 이어지는 완결편으로나 빠지지 않는 균형감이 훌륭하다. 영화 자체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은 영화 중 최고가 아닐지 모르나, 이 작품으로 역대 최초로 완결성을 갖춘 연대기로 경력을 채운 제임스 본드가 되었다. 제임스 본드 데뷔작이었던 [카지노 로얄]부터 본드무비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적이 별로 없는 대니얼 크레이그 였지만, 본드무비의 장르적 유산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한 시리즈였고 마지막 편에서는 자신이 남긴 떡밥을 죄다 긁어모아서 알뜰하게 써먹는다. 단연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주연을 맡은 시리즈 완성도는 (시리즈 자체를 서사극으로 끝낸 첫 사례로) 최고일 수 밖에. 거물 음악감독이 맡은 음악 역시 이전 본드무비의 테마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장면에 정교하게 맞추어 집어 넣어 혀를 내두를 정도.

액션 시퀀스는 좋은데 연출은 종종 기본기를 벗어나 갈피를 못잡아 들인 물량에 비해 효과가 덜 하다. 빼어났던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라스]의 전임자들에 비해 아쉬운 부분. 단순하지만 명쾌한 플롯에 비해 세밀한 전개는 흐름이 끊어지는 부분도 있고, 이해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맥이 풀리는 상황도 많다. 특히 중량급 악역 활용이 매우 약해서 보스 3인방의 존재감이 [스펙터]의 힝스 하나만도 못하다. 마틸드가 악당의 손에서 탈출해 본드에게 돌아오는 장면에서 어색함을 느낀 관객이 한둘이 아닐 듯.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은 대니얼 크레이그 시대 본드무비를 장중하게 마무리 하는 영화이자 장르의 전통을 영리하게 재해석한 작품. 수준 이상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본드무비의 최고는 아닐 것이고, 심지어 대니얼 크레이그 본드무비의 최고로 꼽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대단원으로 마무리하고 전례가 없었던 본드무비 시리즈를 완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 / 데스틴 다니엘 크레톤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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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션(시무 리우)과 케이티(아콰피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함께 집 주변에서 주차원을 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던 두 사람은 버스에서 션의 목걸이를 노린 악당들이 나타나며 바뀌게 된다. 목걸이를 뺏긴 션은 친구 케이티에게 본명이 샹치라고 밝히며, 아버지 웬우(양조위)가 여동생(장몽아)의 목걸이도 노릴 것이라며 마카오로 간다.

10년 동안 대성공을 거둔 MCU에서 오랜만에 등장하는 새 수퍼히어로 탄생기. 익숙하지 않은 인물을 관객에게 소개하기 위해 필요한 서술의 규모와, 결국은 수퍼히어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를 엮기 쉽지 않은 탄생기는 이전 MCU에서도 썩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좋았던 영화는 [아이언맨][스파이더맨] 정도로 드물고 [닥터 스트레인지][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같이 아슬아슬한 허리가 있지만, (워낙 기본 수준이 높아 엉성한 다른 영화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하더라도)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밋밋하고 쳐지는 작품을 찾기는 쉽다.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시작한 [샹치]도 결국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평범하게 생긴 신인 배우를 캐스팅 했더라도 결국은 영웅이 될 것이며 위기가 몰려오지만 극복할 것이고, 악당이라는 아버지는 마지막 즈음에 아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면죄부를 받을 것이다.

장르물에서 예상 가능한 이야기와 선명한 인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좋은 장르물이라면 뻔한 플롯 사이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세부 설정과 색다른 소재를 엮은 능란한 변주로 풀어낸다. 이전 MCU에서 볼 수 없었던 신화적 중국과 사랑꾼 아버지와의 대립은 영화의 개성을 위한 안배였을 것이다. 이야기는 빠진 곳이 없으니 샹치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참 사랑했고, 샹치는 견디다 못해 아버지와 대립했고 그 와중에 누이도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묘사가 하나 같이 표피적인 수준을 넘지 않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적으로 몰입하기가 어렵다. 진지한 상황에서 결국은 쫄쫄이 유니폼을 입고 액션을 펼치는 수퍼히어로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MCU 솔로 데뷔작은 이런 전형적인 함정에서 벗어난 플롯이었다.

액션 시퀀스는 CG를 절제한 장면일 수록 좋다. (故 브래드 앨런이 참여한) 홍콩 무협식 액션은 성가반에서 와이어를 썼을 법한 장면을 CG를 이용해 대체한 정도에서 최고점을 찍는다. 후반부 탈론에서부터 CG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나면 다른 최근 헐리웃 영화와 차이점을 찾기 어려워 감탄할 만한 구석이 점점 없어진다. 가볍기 짝이 없는 CG 괴물을 상대하는 명장면을 이미 우리는 이전 MCU에서 너무 많이 보았다.

맥 없는 인물 묘사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뻔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양조위의 깊은 눈매와 존재감은 뭔가 있어보이는 무게가 있다. 여기에 숨구멍을 열어주는 벤 킹슬리까지 대배우를 신인 사이에 넣은 전략은 수퍼히어로 영화의 유구한 전통이지만 여전히 효과적이다. 최소한 시무 리우의 평범함과 특기를 살려 가볍게 튈 법한 아콰피나의 역할을 잡아주는 이정표로 좋다.

수퍼히어로 솔로 데뷔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한 범작 MCU 영화. 수준급 액션 시퀀스와 적절한 유머, 리드미컬한 전개는 여전하지만 독보적이지는 않다. 액션 시퀀스는 반가우나 영화의 이국적인 중국풍은 미국계 아시안을 대상으로 했는지 본토 아시안에게는 미국 중국집 음식처럼 별세계로 느낄 만 하다. 참신한 신작보다는 이후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지나가는 다리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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