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겁하는 낙서공간

eye2eye.egloos.com

포토로그




다키스트 아워 (2017) / 조 라이트 단평

출처: IMP Awards

프랑스를 침공할 때까지 히틀러를 내버려두었다는 이유로 수상에서 물러나는 체임벌린(로널드 픽업)은 상대 당에서도 동의할 총리로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먼)을 추천한다. 하지만 처칠은 해군성 장관으로 근무하던 제1차 세계대전 때 무모한 작전을 입안한 호전적인 인물로 악명이 높은 상태. 영국까지 금방 쳐들어올 것 같은 독일을 상대로 항복 없이 항전을 주장하는 처칠은 체임벌린을 주축으로 한 협상파에게 견제를 받는다.

전쟁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랑스가 순식간에 나찌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전시내각을 꾸린 윈스턴 처칠이 당내 입지를 극복하고 의회를 항전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벨기에와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에 대한 공포를 선명하게 그려, 당시 영국이 느꼈을 감정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한다. 그 와중에 소수파임에도 불구하고 내각을 맡아 흔들리는 자신과 의회를 설득하는 과정이 (마지막에 각색 의도가 선명한) 몇 장면을 빼고 극적 사건이 없음에도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몇 안되는 극적 상황에서도 감정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절제한 연출과 인물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섬세한 연기를 한 배우들 덕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독일군이나 전투 장면 묘사 없이도 긴장을 끌고가는 솜씨가 좋다.

작가의 전작도 그렇거니와 비슷한 시기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처럼 전투와 아비규환에 집중하지 않고, 정치적 상황과 개인적 고뇌만으로 풀어낸 각본과 연출이 일품. 무엇보다도 (연기상에 아깝지 않을) 캐리커쳐에 가까운 묘사 사이에도 진한 감정과 개성을 섞은 게리 올드먼의 묘기와 같은 연기가 대단하다. 다른 배우들도 좋지만 워낙 빼어난 연기가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덕분에 명불허전.

큰 사건을 이끈 한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섬세한 영화이자, 작년 같은 사건을 다룬 건조하고 독특한 전쟁영화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 심지어 같은 소재를 멜로와 섞어 풀어낸 작가 자신의 출세작과도 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다. 빼어난 연기를 끌어낸 능란한 심리 드라마지만 조금은 심심한 영국 정신에 대한 모범적 보고서.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