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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 (2021) / 라나 워쇼스키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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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 Awards

대히트 3부작 게임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든 유명 게임 개발자 토마스 앤더슨(키애누 리브스)은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회사 건물 옥상에서 있었던 축하 파티 도중에 투신을 할 뻔한 일로 상담사(닐 패트릭 해리슨)와 주기적으로 면담을 한다. 회사에서 원작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새로운 [매트릭스] 3부작을 만들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친구이자 회사 사장(조나단 그로프)은 동의할 기세다. 토마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찾는 카페에서 마음을 끄는 여자 티파니(캐리-앤 모스)와 마주치지만, 그녀는 애가 셋 있는 유부녀다.

이전 3부작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매트릭스]의 바이러스인 스미스 요원을 함께 제거하고 인류와 기계의 신사협정을 맺는데 성공한 네오(뿐 아니라 트리니티)가 모종의 이유로 죽지않고, 기억을 잃은 체 새로운 [매트릭스] 세계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간 공동체 ‘이오’에서 온 저항군이 다시 네오를 일깨우며 시작하는 이야기. 지난 마지막 이야기에서 60년이 흐른 후라는 설정으로 네오가 희생할 때 기계와 맺은 조건이 다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인류 공동체에도 많은 기술 발전과 변화가 있는 세상이 배경이다. 애시당초 원작 3부작이 1편의 완결성 있고 깔끔한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속편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복잡한 설정만 더해서 끌어가다 뭔가 있어보이지만 점점 공허한 액션만 남은 작품이다보니, 원작자가 직접 나섰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작품. (완결로 딱 떨어지는 이야기를 아예 뒤집어 버리며 더 나은 속편 중 하나로 꼽히는 [터미네이터 2], 장르를 바꾸면서 시리즈의 물꼬를 튼 [에이리언 2], 프리퀄과 속편을 교차편집하며 전편의 주제의식을 두텁게 확장한 [대부 2]가 괜히 드문 경우인게 아니다.) 그나마 원작자가 감수하면 더 나으려나 기대했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와 다른 경우다.

삼부작에 걸쳐 누더기처럼 이어붙여서 더 이야기가 나올 공간이 있나 싶었던 불안감에 비해서 막상 덧붙인 아이디어가 좋다. (네오를 살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차용한 희생 마무리는 흐지부지 되어버렸지만) 인간과 기계의 중간 지대에 해당하는 존재라던가, 프로그램을 인간 세상에서 물리적으로 형상화 한다는 개념이라던가, 기계와 기계의 전쟁이 있었던 배경 설정처럼 쏠쏠한 아이디어를 많이 고안했다. 특히 주인공이 가상세계에서 [매트릭스]라는 게임을 만들었고, (원작자 = 네오는 더 만들 생각이 없는) 그 게임을 회사 쪽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후속 3부작을 만들려고 하는 상황을 그린 시퀀스는 본 영화의 제작 과정을 캐리커처한 것이 분명해 재치있고, 흘러가는 자조적인 대사(“난 [매트릭스] 3부작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매트릭스]는 불릿 타임!” “[매트릭스]는 역시 총격전이지”)로 재미를 더한다. 각오하고 이런 메타 시퀀스를 농담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영화로 만들었다면 [13층]과 [프리가이]를 섞어 놓은 독창적인 영화가 되었을 지 모르고, 기계와 기계 전쟁 사이에 낀 인간이라는 설정을 잘 활용했다면 2차 세계대전 특공 장르물 같은 스타일로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막상 (분명 영화 기획 과정에서 골똘히 고민한 티가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서 영화가 나가는 방향은 다시 (특히 1편) 전편의 답습에 가깝고 고민과 별개로 (원작자가 아니었어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안전한 방향을 향한다. 더구나 이전 시리즈까지 자잘한 설정을 더하면서 (1편이 쏟아놓은 상징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떨어지는 히어로 전설로 깔끔하게 정리한 이후) 끼어든 액션 사이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공허한 선문답은 여전히 나쁜 버릇으로 남아있다. 영화만 보아서는 (새로운 ‘불릿 타임’을 의식하고 만든 게 분명한) 시간 느리게 가기가 왜 (이전 3부작에서는 불가능 했는데) 이번 [매트릭스]의 대리자 ‘애널리스트’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스미스가 왜 네오와 싸웠다가 한편 먹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네오와 트리니티를 살려두어서 연료 효율이 좋아진다는 설정처럼 설명만 있지 몰입이 힘든 장면이 너무 많다.

더 나쁜 점은 새로 들어온 설정을 모조리 주요 등장인물이 설명하는 것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주요 시점 등장인물(벅스 – 니오베 – 사티)은 모두 나레이션을 위해 넣은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액션 시퀀스가 들어가기전 이야기는 지루하고 늘어진다. 최악은 이 모든 설정 놀음과 장황한 배경 설명이 이전 3부작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 심지어 이전 시리즈 장면을 인서트 컷으로 수시로 사용하는 이번 영화는 마치 드라마 시리즈의 영화 특별편 같은 느낌이다. 이전 3부작 때도 설마설마 했던 의심, 작가는 정말로 심오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던 것일까.

워쇼스키의 필모그래피가 [매트릭스] 1편 이후 계속 내리막을 달리고 있는 또 다른 증거. 조로(早老) 후 심오함의 어깨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블랙홀의 한 구멍.(다른 구멍은 [주피터 어센딩]으로 아슬아슬하게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눌렀다.) 의외로 괜찮은 아이디어가 많아서 영화적 야심이 사라진 뻔한 길를 달린 영화가 더욱 아쉽다.

+1) 휴고 위빙을 어떻해서든 캐스팅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 제작을 늦춰서라도.

+2) 크리스티나 리치를 정말로 까메오 수준으로 쓸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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